삶의 잔영 192

問道禪行錄/김미루

빵은 사먹어도, 책은 잘 사지 않는다. 지식을 쌓는다고 인격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수십년을 살아 봐서 안다. 그리고 머리속에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고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비우는 연습인 명상을, 어머니 돌아가신 5월 부터, 매일 아침 20분씩 하면서, 여러 잡다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자 더 노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 재미도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들이 게임하면 게임하지 못하게 하면서, 본인은 책 읽는데 빠져 있다면, 이건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과 같다. 재미 있고, 지식을 좀 쌓을 수 있지만, 별로 큰 줄기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게임이 나쁘지 않듯이 독서도 나쁘지 않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것도 같다. 지금 내가 가는 길에 서서 바라..

삶의 잔영/책 2020.09.09

불교적 관점의 직업, 正命(바른 직업)

사람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활동은 공익에 기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해악을 가져오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직업에 대한 불교적 관점은 어떨까요. 불교의 중요한 실천 수행지침으로 8정도八正道가 있습니다.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道聖諸의, 구체적 방법인, 8정도에는 정명正命(바른 직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른 직업에 종사하며 살 수 있다면, 선업을 쌓을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행위에는 인과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각각의 존재가 행한 행위는 원인이 되어, 선업과 악업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에서 일한다면 바른 직업이고, 반대인 경우는 올바른 직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해악을 가져온다면 피해야 할 직업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직업正命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식당은 사람에게 음..

49일째

지난주에 이어 천장암 일요 법회에 다녀왔습니다. 법회 후 저녁 때, 해미의 가야산 자락 깊은 계곡으로 가서, 텐트를 쳤습니다. 하룻밤 산잠을 잤지요. 저녁 10시쯤, 달빛에 깃털처럼 흐트러진 하얀 구름 떼가 하늘을 유랑합니다. 잠을 자다가 새벽 2시 쯤 다시 일어나 하늘을 봅니다. 달은 지고 거뭇한 구름떼 사이, 맑은 하늘 호수엔 별들이 총총히 빛났습니다. 초저녁에 반짝이며 날아간 반딧불이는 더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속옷차림으로 밖으로 나갑니다. 한참동안 별들과 깃털 구름이 어우러진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북두칠성이 선명합니다. 어릴적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0도, 조금 싸늘한 기운이 느껴져, 텐트 안으로 들아와, 입구에 머리를 두고 누웠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늘에 박힌 별들이 보였습..

일요법회 & 텃밭 & 두리안

일요법회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10시부터 법회가 시작된다. 8 시 50 분쯤 서산 톨게이트를 나와 처가집에 잠깐 들러 장모님께 인사드린다. 오늘은 선방에서 하안거 중인 스님들께서 예불을 진행하셨다. 점심 공양 후엔, 선방에 몇 년째 머물고 계신 스님과, 초기불교의 경전인 상윳다니까야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니까야는 대승불교가 주류인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경전이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청정하신 스님과 시간을 함께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4시쯤, 빈 시골집에 가서, 뒷산의 어머니, 아버지 묘소에 인사드리고, 텃밭에 심어 놓은 작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살펴 본다. 몇 그루 되지 않는 채소들이지만, 엄연히 나의 올해 농사다. 어이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운여해변

토요일, 안면도 남단의 운여해변에 가서, 텐트치고 잠자다. 일요일, 돌아오는 길에, 고향 빈집에 들려 어머니 묘소에 인사드리다. 빈 집앞의 밭에 20 여일 전 심어놓은 상추 고추 등이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다. 잘 자랄리가 없지. 심었던 크기 그대로다. 올해엔 돌아가신 엄마가 잠든 고향에 자주 가보려고, 그냥 이런 것들이라도 심었다. 물 2 양동이 떠다가 뿌려주었다. 그냥 이렇게 허공을 걷듯이 살아가고 싶네요 사진 찍는 사람들이 이 풍경을 위해서, 멀리서도 온다고 합니다. 좋은 자리에는 텐트 친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조금 떨어진 이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코로나도 피하고..... 어느 분이 뭘 잡아서 손질하고 있어서 잠시 구경한다. 모래에 물기가 없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지요. 바로 근처 모래에는 살짝 젖..

달봉이

우리집에 2009년 10월쯤 온 달봉이는, 14살된 푸들 미디엄입니다. 온순하고 영리하며 아주 착해서 말썽을 부린적이 없습니다.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우고 10 여일 쯤 여행하고 돌아와도, 혼자서 잘 지내던 아이입니다. 아침에는 식사시간에 딸과 제가 자는 방을 각각 찾아다니며,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밥이 다 되어 준비가 끝나면, 꼭 그 때 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밥이 준비되었으니 나와서 밥을 먹으라고 일러 주는 신호였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2010년 쯤 내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는, 근처 광교산 꼭대기까지 왕복 8km를 함께 다니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다리를 불편해 하면서도, 배변 장소인 베란다로 나가 대소변을 보았습니다. 안타깝지만 무상한 우주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