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영/일상

달봉이

자작나무. 2020. 5. 20. 09:36

우리집에 2009년 10월쯤 온 달봉이는, 14살된 푸들 미디엄입니다.

온순하고 영리하며 아주 착해서 말썽을 부린적이 없습니다.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우고 10 여일 쯤 여행하고 돌아와도, 혼자서 잘 지내던 아이입니다.

 

아침에는 식사시간에 딸과 제가 자는 방을 각각 찾아다니며,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밥이 다 되어 준비가 끝나면, 꼭 그 때 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밥이 준비되었으니 나와서 밥을 먹으라고 일러 주는 신호였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2010년 쯤 내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는,

근처 광교산 꼭대기까지 왕복 8km를 함께 다니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다리를 불편해 하면서도, 배변 장소인 베란다로 나가 대소변을 보았습니다.

 

안타깝지만 무상한 우주 법계의 모든 존재는 세월의 칼날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달봉이는 오늘 새벽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딸이 새벽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달봉이를 돌봐 주었지요.

 

달봉이는 떠났지만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오랜동안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특히 딸이 고등학생 때, 달봉이를 만나서 달봉이를 예뻐했습니다.

 

달봉이가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빕니다.

 

 

 

 

 

 

달봉이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지요.

 

언젠가는 식탁의 그릇 속에 큰 빵을 넣어 두고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와서 그릇의 뚜껑을 열어보니 빵이 없어져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뚜껑이 그대로 덮여 있어서, 달봉이를 의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달봉이의 배를 보니, 빵을 다 먹었는지, 빵빵하게 커져 있더군요.

베이커리에서 산 큰 빵인데, 다 먹고 뚜껑도 감쪽같이 덮어 놓았으니....

 

또 언젠가는 외출에서 돌아오니, 달봉이가 보이지 않더군요. 한참을 이곳 저곳 찾았습니다.

결국 찾지 못했지요. 참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침대 위 이불 중앙에 가만히 누워서, 들킬까봐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비만이 된다고 조금씩 먹여서 배가 고팠을 겁니다.

그리고 침대에는 못올라 오게 하니까, 아무도 없을 때 주인처럼 자보고 싶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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