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영/詩처럼 13

어린 새싹들 실바람에 살랑이는 그곳에서 그대에게 연초록 편지를 쓰고 단풍잎 떨어지는 그곳에선 색 고운 잎에 그림을 그리지 귀뚜라미 우는 밤 숲에 누우면 떡갈나무 잎사귀 스치는 바람에 은하수 물결이 일고 반짝이는 별들이 떠내려간다네 노을 빛 물든 그곳에 가면 어느덧 그대의 은빛 머릿결에 하얗게 슬픔이 내려앉지만 바람이 불면 그곳으로 간다네 그곳엔 내 가슴의 출렁이는 강물에 지난 삶의 기억들이 시 조각처럼 떠다닌다네 - 산 21.10,16. 자작나무 -

오서산에서

21.09.25 - 21. 09.26 하늘 닿은 산 능선에 바람이 불어 비탈진 억새밭에 하얀 물결 입니다 머리 위 흰 구름 떠다니는 파란 하늘은 어릴 적 소 풀 뜯기며 풀섶에 누워 바라보던 그 하늘 빛, 바라볼 수록 깊고 경외스런 그 빛의 하늘입니다 곡식 여무는 산 아래 들판에서 밀레의 종소리 경건하게 들려옵니다 억새밭 펼쳐진 산 능선길 따라 깊은 하늘 호수 바라보며 혼자 걷습니다 가을이면 가슴에 흐르는 서글픈 강물이 가슴에 비친 저 하늘의 그림자는 아닐까 생각하면서 걷습니다 - 오서산에서, 21.09.26 자작나무 - 9월 25일 토요일 오후에 갑자기 오서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에 백패킹하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습니다. 몇가지 백패킹 용품을 샀는데, 이게 꼭 아이들같이 그걸 빨리..

천장암 하늘에 흰 구름떼 떠가고

선정 속 아미타 부처님의 생멸 없는 고요가 흘러나는 법당 앞 마당에 서면 꽃이 진 연잎들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엔 흰 구름 떼들이 길 없는 길을 따라 오가고 흩어집니다 스님들 떠난 빈 선원의 처마 끝을 스쳐 온 바람결에 번뇌의 가슴이 씻기고 산사의 마당가에 선 단풍나무 아래 빈 의자에 도시의 갈망을 슬며시 내려놓고 수원 집으로 갑니다 「천장암에서 , 21.8.22. 자작나무」 선정에 든 천장암 아미타 부처님과 텅빈 마당 법당 앞에 연꽃을 심은 포트의 수면엔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 비친다 하안거 해제로 스님들이 떠난 천장암 염궁선원

가을에

하루 하루 쳇바퀴 돌아간다 처음 돌리기 시작한 어린 시절엔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에 눈을 맞추었지 청년 시절엔 여기 저기 멋진 아가씨들 모습이 눈알에 맺히더니 돈을 좆아 허공에 눈의 촛점을 잃어버린 순간부터 쳇바퀴가 나를 돌리지 그저 돈 다발이 있는 곳으로 돌리고 돌리지 살아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의미가 있기나 한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일까 바른 삶의 정형이 있을까 시간이 있는데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시간이 쉽게 지나가는데 시간 보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거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가을 잎새 떨어지면 뱉는 이런 넋두리들은 별 의미도 없고 지나가면 그만이긴 하지 그래도 해마다 떨어지는 잎새에 실려오는 이런 넋두리는 봄여름가을겨울이 해마다 돌고 돌듯이 그리고 저..

꽃잎 편지 띄웁니다

운산 용나래미 노을빛 물든 황혼이 있어 새벽을 밝히는 일출이 더 경이롭고 꽃잎처럼 떨어져 내린 그날의 기억으로 청춘의 봄날은 더 그리워지고 떨어지며 흩날릴 꽃잎의 숙명에 꽃들의 잔치는 더 찬란하더라 꽃잎의 그날은 나에게도 오리니 내 오늘의 호흡을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꽃비 내리는 이 봄날 출렁이며 여울지는 젊은 날의 기억에 붉은 꽃잎 몇 장 띄워 보내며.... 운산 용비지

흐르는 강물처럼

어머니 산비탈 자갈 밭떼기며 똘강 옆 작은 밭 뚝셍이에도 평생의 호미질로 길들여진 그 풀들의 후손이 살어가고 있겄지만 인저 나한티는 요양원의 한 평 침상이 이승의 우주고 굳은살로 갈무리된 내 삶의 두께가 어느덧 시간의 풍파에 투명지처럼 얇어져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얇은 막에 투영되 듯 먼저 간 할아배가 나오고 어려서 잃은 딸이 나오고 가끔 이승 너머의 얘기가 들리구 여기가 거기 같더니 몰록 살구 죽는 거가 꿈처럼 헛갈리게 아름다운 날 아들이 와서 치매라고 허더라구 밭고랑을 몰래 들락이던 그 밉던 고라니며 토끼며 오소리며 까치며 비둘기에다 밭 뚝에 난 까치밥풀 민들레 쑥 바랭이 지랑풀 비링이지팽이 비름 이런 풀덜이 아- 내 아름답던 영토의 손님이었다는 걸 그 때는 왜 물렀는지 그러구 들깨 밭에 지랄로 댕..

껍질 속의 도토리

애벌레의 이빨이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에도 비바람에 떨던 가지들의 흔들림에도 나란히 앉은 도토리가 누렇게 시들어 가도 아무도 바라보지 않았어 무서워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 들어와서 어둠 속에 움츠리고 혼자서 울었어 밝고 따스한 햇빛이 그립고 시원한 바람의 노래가 그립고 푸른 숲의 요정이 그리워도 이제 껍질을 나갈 수 없어 시간의 강물에 내 몸 밖의 껍질이 내 몸이 되어 때로 어둡고 숨막히는 감정이 밀물처럼 나를 삼키지 숙명의 운율에 한알 몸뚱이를 실어 시간을 가르고 깍정이에서 내 몸이 굴러 떨어질 때까지 숲속 밤하늘의 별무리, 바람의 노래, 요정의 이야기는 어둠 속 가슴으로만 그리지 (도토리의 슬픈 노래 , 2019.10.18 자작나무)

오월 아름다운 날에....

하얀 찔레꽃 향기 파란 하늘로 퍼집니다 떡가루같은 이팝나무 꽃잎 오월의 금빛 햇살에 순백의 결정을 토합니다 청신한 실바람 스칩니다 열브스름한 나뭇잎 한들 한들 무심한 허공에 잔물결 입니다 꽃잎들 바람결에 노래하는 오월의 하루 육십갑자에 몇 갑자를 더 돌아나온 거칠었던 호흡 고요히 내려놓습니다 그 길은 혼자서 가는 길 예순넷 매형이 떠납니다 지친 몸 훌훌 벗고 저기 푸른 창공으로 갑니다 오월 아름다운 날에 슬픔이 내리는 이유입니다 옅은 구름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오고 엷게 물든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하루입니다.

홍매화 핀 봉은사

잎이 없는 나무에 바람이 불면 아직 봄이 아니다. 남쪽엔 매화가 한창인가 보다. 내가 사는 수원엔 아파트 정원에서 한그루 매화 나무에 1송이 2송이 수줍게 기지개 편다. 봉은사 근처에 갈 일이 있어 집사람과 함께 길을 나선다. 그곳에 몇 그루 홍매화 활-짝 피어있고 산수유 나무엔 노란 빛이 내려 앉았다. ♡ - - - - ♡ 오늘 몇 그루 매화에서 화사한 봄기운 흐른다. 겨울을 가르며 봄으로 흐르는 봄강. 내 마음에 빨간 매화 꽃잎들 떠내려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