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산비탈 자갈 밭떼기며 똘강 옆 작은 밭 뚝셍이에도 평생의 호미질로 길들여진
그 풀들의 후손이 살어가고 있겄지만 인저 나한티는 요양원의 한 평 침상이 이승의 우주고
굳은살로 갈무리된 내 삶의 두께가 어느덧 시간의 풍파에 투명지처럼 얇어져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얇은 막에 투영되 듯
먼저 간 할아배가 나오고 어려서 잃은 딸이 나오고
가끔 이승 너머의 얘기가 들리구 여기가 거기 같더니
몰록 살구 죽는 거가 꿈처럼 헛갈리게 아름다운 날 아들이 와서 치매라고 허더라구
밭고랑을 몰래 들락이던 그 밉던 고라니며 토끼며 오소리며 까치며 비둘기에다
밭 뚝에 난 까치밥풀 민들레 쑥 바랭이 지랑풀 비링이지팽이 비름 이런 풀덜이
아- 내 아름답던 영토의 손님이었다는 걸 그 때는 왜 물렀는지
그러구 들깨 밭에 지랄로 댕기다 죽은 배얌헌티도 참 미안허구
그 넓고 찬란헸던 내 영토가 침대 위로 좁혀져서는
여기서 자고 먹고 누고 숨쉬고 게슴츠레한 눈알을 굴려는 보넌디
인제 내 삶의 두께가 더 얇어져 여기 저기 다 통하게 되는 날
여기서 거기로 바로 통허겄지 뭐 오고 가고 헐게 따로 있겄어
난 갈 심도 읎쓰니께
그리두 그때 그 고라니 선한 눈매가 지금도 그립긴 헌디...
<93세 어머니 2019.12.01 자작나무>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다녀왔다.
이제는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신다.
기력이 쇠하여 스스로 힘들어 한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하신다.
시골집에 데려다 달라고.
요즘 부쩍 활력을 잃고 침울해 보인다.
생로병사, 삶은 고(苦)라고 경전에 나오는 말이 틀리지 않은가 보다.
누구나 그런 코스를 밟아가야 한다.
대부분 죽음은 자기와 먼 이야기라고 애써 외면하며 즐겁게 생활한다.
그리고 해는 뜨고 바람은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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