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영 192

추석

추석에는 고향을 떠나 사는 형제들이 모인다. 환갑이 지난 형님도 있다. 고향의 어머니가 건강했을 때는 분위기에 활기가 느껴졌다. 이제는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들의 얼굴에도 세월이 묻었다. 60을 넘긴 아들이 엄마를 찾아와본들 새끼염소가 엄마염소 옆에 있는 그림이 아니다. 집뒤 밤나무에는 밤톨이 익어 땅으로 떨어지지만 줍는 사람이 없다. 청설모는 신이 나서 나무 꼭대기 벌어진 밤을 거두어 간다. 이제는 86세의 노인이 되신 어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고향에 계시다. 어딘지 쓸쓸하고 빈자리가 느껴지는 한가위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정선 숲길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평창 진부면의 사기리에서 정선의 구절리까지 이어진 길을 걸었다. 24km의 숲길이다. 중간에 식당이 없어 쫄딱 굶어가며 걸었다. 태풍이 지나가며 내린 비로 계곡사이에 물길이 살아나고, 작게 굴곡진 사이에는 어디에나 물기운이 흥건하다. (그러나 오늘은 맑고 날씨가 좋다).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서 깨끗한 냇물을 이루며 길옆을 흐른다. 소란스런 상류의 냇물이 구절리 하류에 이르면 어느덧 침묵의 강으로 변한다. 아름다운 산하다. 냇물이 되어 흐르다. 산비탈 절벽에 오줌처럼 뻗쳐 대는 물줄기 비탈진 계곡을 내달리는 물줄기 땅강아지처럼 송송송 흙속을 파고 나오는 물줄기 도란도란 재잘재잘 냇물되어 흐른다. 잔돌에 넘어질 듯 엎어질 듯 길거리를 점령한 1학년 아이들처럼 비틀비틀 시끄럽게 흐른다..

먹고 사는 이야기

사람이 먹고사는 길은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못해 신묘하기까지 하다. 나도 이 일에 있어서 복잡다단하고 미묘하며 다사다난한 여정을 지나왔고 지금도 어디론지 향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직장생활 처음 10년 동안에 회사를 12번이가 13번인가 옮겨 다녔다. 그때는 이사도 6개월에서 1년에 한번 이상을 다녔다. 이사와서 짐 풀고 정리하고, 다음날이 되면 또 이사를 준비하는 꼴이다. 우리의 조상이라는 중앙아시아 유목민 DNA가 아직 나에게는 활발히 작용하는가 보다. 초원의 노마드(nomad) 인자가 도시에서는 이런 형태로 발현되는가 생각해 본적이 있다. 통신용 전자부품(RF 필터, VCO, 써미스터..등), 전자제품, 열차 추진장치 및 제동장치, 전철용 판타그라프, 핸즈프리, 전사지, 주방용품, 보험회사 소장,..

포기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요즘 나의 생활을 가만히 지켜볼 때가 있다. 그동안 살아온 나의 생활 패턴과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항상 outsider로 주변을 맴돌았고, 사회통념상 절대적이라고 강요되는 가치나 행위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이놈은 이런 생각, 저놈은 저런 생각을 갖고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한가지 밑바탕에 흐르는 생각은 가난한 사람도 먹고 살고, 부자는 당연하다는 생각 이전에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똑똑한 놈은 이세상에 없다는 생각이다. 똑똑한 것이 무었인가. 도토리 키재기다. 그 사람밖에 못하는 일은 별로 없다. 줄앞에 있다고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다. 현재의 사회현상을..

우연 - 반실반실(半失半實)

두 해 전 일을 그만두기까지 근 2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하였다. 중간 중간 나만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 다른 일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을 벌이기 위해 멀리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에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욕심만 앞서면 그렇게 되는 것이 사필귀정임에 틀림없다. 다시 회사엘 다녔다. 사람들은 역마살이라고 했다. 그 말이 듣기 싫어 마지막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하고 회사생활을 접었다. 20 년 동안 주로 전자 부품이나 전자 제품을 수출하는 일을 하였다. 마지막 즈음엔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구안와사로 힘든 생할을 하였다, 회사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2 년 전 나는 편한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왜냐하면 더 이상은 회사생활이 불가하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