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속엔 항상 넓고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 지리산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쯤 지리산엔 맑은 물이 계곡의 바위들을 안고 구르며,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겠지. 계곡 개울 속 반들반들 둥근 돌과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물 소리는 그야말로 지금처럼 더운 여름에 생각만으로 시원스럽다.
지난해 여름 추성리 계곡 벽송사 근처의 계곡물에 미역감던 생각을 하면 온 몸에 소름이 솟아난다. 시원하다. 계곡속 큰 바위 위에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로 푸른 물결이 흐르고, 나는 물 속에서 나와서 따뜻해진 넓은 바위에 몸을 기대어, 솟아난 소름을 가라 앉히곤, 다시 물로 들어 갔다. 그 나무 아래 바위에 누우면 잎새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벌판을 흘러가는 조각 구름은, 양떼들처럼 한가로웠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한없이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듯, 공중을 날고 있다. 상상인지 환상인지.
지리산 의신마을 최도사집 안마당으로 오르는 길.
계곡에 둥근 돌 3개를 주워 정성으로 만들어 놓은 3층짜리 돌탑은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지, 다 쌓고 나서 삼배를 올렸던 그 돌탑. 3-4미터쯤 떨어진 곳에선 다람쥐가 쫑긋쫑긋 나를 구경 하던 곳. 지난 장마 큰 물에 그 돌탑이 떠내려 갔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집엔 에어컨이 없다. 식구 모두 더위를 덜 타는 체질이기도 하고, 더우면 더운대로 그대로 견디며 살고 싶은 것이다. 전자제품을 가까이에 두고 생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이러한 습성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은연중에 아내와 딸에게도 전염되었다. 아무튼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몸은 그러한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아파트의 양쪽 문을 열어 놓으니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내 어깨쭉지 살갗에 닿는다. 시원한 맛이 어깨를 감싼다. 우리집 아파트는 15층 중 9층으로 통풍이 잘 되고 겨울엔 햇빛이 밝게 들어온다. 오두막이든 대궐이든 이것이 중요하진 않아도 햇빛과 주변경관은 중요시하는 나의 풍수지리적 취향때문이다.
요즘엔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고 있다. 십여년전 돈도 없이 마음만 앞서 사업을 하려고 발버둥치는 중에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까지 가서 벌벌거리고 다니다가 결국 다시 회사생활을 한 것이다. 조직생활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세월에 내 모습도 비껴가지 못하고 이렇게 쭈그러졌다. 그래도 나를 의지하는 가족과 돈을 눈앞에 그리며(?) 꾹 참고 10년을 지내고 나니 집 한칸은 마련 했는데 내 몸엔 병이 들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 어영부영 해도 되는 취향에 맞는(?) 회사에도 다시 다녔다. 오래 갈 리가 없다.
환경이 변했다. 다행히 해볼만한 아이템을 만나 요즘엔 그냥 왔다갔다 바쁘다. 마지막으로 도시에서 힘을 쏟는 생활을 해보려고 한다. 빌딩숲 사이 사이엔 그 놈의 돈을 쫓는 어른들 놀이터가 있다. 너도 나도 아침만 되면 가방메고 우르르 나온다. 어떤 놀이터엔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다른 놀이터에선 전쟁놀이 총대신 망치나 다른 연장 또는 차를 타고 논다. 어떤이는 내용을 알고 보면 꽝인데 그냥 으시대며 놀고 다른이는 기죽을 일이 없는데 기죽어서 구석에서 깡소주를 마시며 신세한탄놀이를 겸한다. 나도 여기 놀이터에서 잠시 놀아 보려고 한다. 돈좀 있으면 개폼잡고 생지랄을 떠는 놀이터에서. 엄마가 들어오라고 할때 집에 갈 것이다.
지리산은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나는 잠시 놀이터에 머물뿐 여기가 내자리는 아니다. 어찌되든 머지 않아 지리산으로 가려고 한다. 그때 잘 되어 돈가방을 메고 지리산으로 향하든, 반대로 그럴듯한 가방에 빨지 않은 팬티만 가득 채워 메고 향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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