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영/일상

며느리밑씻개와 화장실 문명사... ㅎㅎㅎ.

자작나무. 2012. 12. 11. 18:44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 있다.

지금도 여느 시골의 밭둑이나 작은 냇가에는 덩굴로 자라는 이 풀이 천지다.

 

예날, 시어머니가 뒷간에 밑씻개로 일부러 이 풀을 베어다 놓았고

며느리는 얼떨결에 이것으로 일을 본 후  씻게 되었다는 얘기가 따라다니는 풀이다.

이 풀은 작은 가시가 붙어 있다.

 

<며느리 밑씻개>

 

1960년대, 어렸을 때 시골의 뒷간에서는 부드러운 지푸라기를 밑씻개로 이용했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종이가 귀한 시절이니 당연한 결과다.

 

나는 가끔 '옛날에는 어떤 재료를 사용했을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쓸데 없는 생각의 파편이리라.

어떤 면에서는 인류사에서, 인간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지만 나타나지 않는 생활사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허튼 생각도 해본다.

 

티베트관련 책을 읽고 있다. 

내용 중에 지은이가 여행중에 가정집 변소에 갔는데 화장지가 없고 밑에 흙이 떨어진 것으로 봐서

이곳 사람들은 흙을 이용하는 것 같다는 추론을 한다.<나를 달뜨게 했던 열병, 박동식>

티베트는 농사를 짓지 않고, 풀이나 식물이 자라지 않는 기후가 대부분이니 지푸라기와 같은 풀을 활용할 수는 없으리라.

어렸을때 산에서 갑자기 일을 본후에는 아이들이 돌맹이를 사용한 적도 있으니,

흙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내 경험에 빗대어 해본다. 

 

 

                                                       몽골 여행 중  변소에서

 

1998년도에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이라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매우 열악한 경제환경이었다.

이곳에서는 철지난 신문지를 도시의 도로변에서 판매하는 할머니들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사가지고 가서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내가 일을 본 화장실에서도 그 신문지를 작은 사각형으로 잘라 비치해 놓은 것을 보곤 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시골의(내가 태어난 마을) 1970년대쯤에 해당하는 밑씻개 형태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발전된 문명의 기반인 철기문명으로의 변화에 버금가는 혁명적 변환이리라. 

70년대는 우리나라가 급격한 발전을 이룬 시대이기도 하다.

신문을 부자가 아닌 일부 시골사람도 보기 시작했다. 

지푸라기, 흙, 돌맹이등의 자연물에서 종이라는 훨씬 편리한 인공물로 진화된 것이다.

참고로 신문지를 사용하면 잉크물질인, 검은 것이 좀 묻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문지에서 조악한 화장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현대의 화장실문명과 비슷한 구조로 우리의 문화는 완성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비데라는 것을 쓴다. 참 따뜻하고 편리하다.

문제는 세균이나 박테리아등이 플라스틱 표면에 번식하고,

노즐 부분도 자주 닦아서 청결히 사용해야 하지만 이것이 귀찮다는 것이다.

 

중동이나 인도식을 선호하는 친구가 있다. 손과 물로....ㅎㅎㅎ ㅋㅋ

이방식은 매우 불결하고 찝찝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일로 방글라데시나 중동 사람을 만날때는 그런 이유로 그들의 손을 만지기가 찝찝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지금 그 방식을 쓴다. 비데보다 좋다.

비데의 박테리아 걱정도 없고, 화장지도 안쓰고, 욕실과 붙은 화장실은 사후 깨끗이 하기에도 편리하다.

좀 불편한 자세로 엉금엉금 자리를 옮기는 불편함이 있지만 말이다.

 

하여...

우리는 지푸라기 시대, 신문지 시대, 화장지 시대를 관통하여, 비데시대에 이르러 있으며

나는 손과 물의 시대에 있다. 먼 예날 '시냇가 부족의 사람들'이 사용했을 수도 있는 방식이리라.

문명은 돌고 도는가보다. 토인비의 역사 순환이론이 왜 여기서 생각나는지...

 

경제발전사에 비추어 본다면 후진국, 개발도상국, 선진국등으로 분류되는

시대별 밑씻개의 종류들이라면 비약일까.

우리는 몇 세대에 걸쳐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의 문화를 총정리해서 한세대에 경험하는

많지 않은 민족 중 하나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화장실 뒷처리 재료로 다양한 형태를 경험했다. 

 

 

내가 살아온 시골에선 그랬다. 

'삶의 잔영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단 무우꽃의 인연  (0) 2013.04.03
정신 모드  (0) 2013.02.01
생활 주변  (0) 2011.08.28
이렇게 지내지요.   (0) 2011.07.23
베란다 화단  (0) 201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