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하고 분가해서 살게 될 때까지 태어난 마을의 집에서 한번도 주소가 바뀐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후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과 태어난 집에 대한 정서는 강하게 남아 있다. 도시 여기 저기 이사하며 머물고, 이웃에 거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알아도 서로 불편할 수 있는 현대의 거주형태로 인해서, 내 시골집에 대한 감정은 어머니의 느낌과 같다. 비록 마을에서 가장 허술한 집이지만 나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되어 왔다.
어머니 혼자서 시골에 머물다 이제는 여기에 살지 않는다. 혼자서 생할하기에는 시간의 그물이 강하게 신체를 묶어 놓았다. 어머니가 살지 않아 비워진 시골집에 갔다. 벌초하러 갔다. 친척들 모두 함께하는 벌초다. 시골집엔 아직도 20 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적힌 문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앞의 밭에는 키보다 큰 풀들이 빼곡히 자라있다. 마당에도 온통 풀이다. 원시림처럼 한편으로는 멋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가슴에서는 이제 허물어져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몰려온다. 내가 나이들어가고 시간의 흐름을 타고 그곳으로 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현실화된다. 언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 구경을 와야겠다.
새벽에 일어나 개심사에 갔다. 맑은 공기가 좋다.
돌아오는 길. 목장의 방목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개심사 아래 저수지. 이른 아침의 수면에 바짝이는 물비늘이 가슴에 이는 잔잔한 슬픔을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