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영/지리산 빈집살이 & 여행

지리산에 머물던 집

자작나무. 2021. 5. 8. 15:08

 

제가 머물렀던 지리산 계곡, 내원골에는 화전민이 살던 집 3채가 모여 있습니다. 저는 계곡 물가에 있는 초록색 양철지붕의 오래된 집, 오른쪽 방에서 머물렀습니다. 스님이 두분 그 곳에 계셨는데, 각각의 토굴에서 수행 중이셨습니다.

 

그곳에서 산 윗쪽으로 높이 한참을 올라가면, 아늑한 지대가 나오고 그곳에 집 한채가 또 있지요. 노인 분께서 사시는데 겨울에는 내려와 마을에서 보내고, 봄에 다시 그곳으로 올라가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적응이 되어 복잡한 마을에서 살기가 쉽지 않지만, 나이가 드셔서 추운 겨울엔 내려온다고. 스님께서 그곳까지 가스통을 지게에 져올려 드렸다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하루는 혼자 그 집 있는 곳에 올라가보았는데,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집내부도 머리를 길게 빼고 살펴보고서 그냥 내려왔습니다. 그곳으로는 실날같은 길이 있지만, 흐린 산길이라서 다른 곳으로 가기 쉽습니다.

 

지리산을 헤매고 다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지리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그곳 스님과 우연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이런 일들 모두 인연이라고 하시면서, 힘들면 이곳에서 그냥 지내보라고 하셨지요. 지내면서 땔감도 하고, 스님과 나무를 베어다가 샤워장도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습니다. 언제 또 이런 곳에서 살아볼 수 있을지,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기회가 닿아도 산속에서 지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 곳에서는 이름있는 화가, 소설가 등이 와서 머물다가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천장암도 그렇지만 이곳도 어느 소설의 소재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곳에 머물 때 일입니다.

하루는 어느 분이 오셔서, 이곳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 머물고 싶은데, 옆의 빈방에서 지내겠다고 했지요. 말투에서 거부감이 생기고 인상도 부드럽지가 않으니 정이 갈리가 없었습니다. 세를 내고 사느냐, 언제부터 살고 있느냐, 어떻게 여기서 살게 되었느냐, 나도 여기서 살아야겠다 등 자기 마음대로 물어보고 결정하고는 방문을 열어보라고 하더군요. 

 

사실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초면에 이런 질문하면 좋아할리 없습니다. 갖가지 사연이 있을 수 있고, 모두 버리고 들어온 사람에게 세속의 잣대로 내심 우월감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실례가 되기도합니다. 저는 감정적 소통이 되지 않는 한, 아니면 상대가 먼저 이야기 하기 전에는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주인이 아니고 스님이 허럭하셔서 살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괜히 스님이 불편하게 될까봐 얘기를 하지않으려고 하다가, 내가 주인도 아니면서 그 분이 원하는 바를 거절하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에, 마지못해 스님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얘기하는 말투나 태도에서 불편함을 알아버렸는지,  왜 당신은 여기서 살고 나는 여기서 지내면 안되느냐고 따지듯이 말하더군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일이 있다면서 계곡 개울가로 피해 갔는데, 한참 후에 다시 와서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왜 나는 여기서 살면 안되느냐고 불만을 토해내더군요. 스님께 얘기했는데,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냥 살라고 하기도 하고, 살고 싶어해도 살 수 없기도 합니다. 스님 맘이니까요. 그런데 사람에 대한 느낌은 대개 비슷한지 내게 껄끄러운 인상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에 스님께서 말하기를, 수행하며 산속에서 사는데,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지내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산 속 깊은 곳에서 낮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가끔 EBS의 한국기행을 봅니다.  언뜻 보니 그곳이네요.

 

 

제게 빈 방을 주신 스님은 여기 나오는 스님이 아니고, 다른 스님입니다. 그때가 2012년입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그때 얘기를 읽어 보니 새롭습니다.

blog.daum.net/ncsung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