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러시아

발콘스키 하우스와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러브 스토리

자작나무. 2020. 1. 18. 18:12

 

 김종록의 '바이칼'에 나온 발콘스키 아내. <발콘스키의 아내는 마리아 발콘스카야인데, 오류인 듯>

 

<2019.08.01>

바이칼 호수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이르쿠츠크에 가면 꼭 들러봐야지 생각한 곳이 발콘스키 공작의 집과, 트루베츠코이 백작의 집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그들이 생활하던 집과 옷가지, 가구, 악기, 기타 생활 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데카브리스트, 세르게이 발콘스키의 부인인 마리아 발콘스카야가 너무 미인인데, 지고지순한 마음까지 가졌으니 원초적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미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헛발질을 하게 마련인데, 러시아에 이런 순애보의 주인공이 있다니, 당연히 가봐야지....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여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 추위와 굶주림, 대화재로 모스크바가 폐허로 변하고, 프랑스 군들은 굶주리고 지쳐서 퇴각하게 된다. 러시아 군들이 프랑스군을 뒤쫒아 공격하여 파리에 입성하고, 그 댓가로 폴란드를 얻게 되는데, 이때 프랑스에 갔던 젊은 병사와 장교들이 바로 훗날의 데카브리스트들이다.

 

데카브리스트들과 함께 프랑스에 갔던 알렉산드르 1세가 죽고 나서, 니콜라이 1세에게 충성을 서약하기로 한 날, 1825년 12월 14일, 3천명이 넘는 젊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광장에 모여 봉기하는데, 그들의 최고 지도자 트루베츠코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혁명은 실패하고 만다. 이들을 '12월 혁명 당원'이란 의미의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발콘스키 하우스 외부, 목재로 된 저택이다.

 


프랑스 원정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와 발전된 문화를 접하고, 여전히 짜르라 불리는 러시아 황제의 압제와 전근대적 제도 아래서 시달리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봉기한 것이다. 결국 혁명이 실패하자 사형을 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그 감동적인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데카브리스트들은 22킬로의 쇠고랑을 발목에 차고 시베리아 혹한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된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은 귀족의 신분을 유지한 채, 재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만약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면, 귀족의 신분과 모든 특권을 포기하여야 하고, 자녀를 데리고 갈 수 없으며, 다시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올 수 없고, 시베리아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영원히 농노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데카브리스트 중 기혼자는 18명이었고, 그 중 11명의 부인들이 남편이 강제노역 중인 시베리아로 찾아 간다. 그 부인들 중의 한명인 마리아 발콘스카야는 '나의 아기는 행복하지만 힘들게 살고 있는 남편은 나를 필요로 한다' 라며 아이를 가족에게 맞기고 시베리아로 갔다고 한다.

 

 

 

제일 먼저 남편을 찾아간 부인이 예카트리나 트루베츠카야인데, 그녀는 프랑스 이민자 라발가문 출신으로, 어머니 집안이 대단한 재력가이며, 문화적 수준이 높고 명화 골동품을 수집하고, 장서 5천권을 가진 도서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십여일 동안 혹한의 시베리아를 뚫고, 예니세이강을 건너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여,  6개월이 지난 후 남편을 면회하게 된다. 엎드려 남편의 발목에 채워진 쇠고랑에 입을 맞추고 나서 일어나 남편을 껴안고 키스했다. 

 

 

 


                        발콘스키 하우스 내부 모습 - 1800년대 중반 러시아 귀족의 문화적 예술적 고고함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발콘스키의 아내 마리아 발콘스카야는 피아노 연주와 노래에 능하여 러시아 귀족 사교 모임에서 인기가 높았고,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이 그녀를 위한 시를 쓰기도 했으며, 결혼 전, 마리아 발콘스카야는 푸쉬킨과 연인관계로 크림반도를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우리에게 유명한 러시아의 시인이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은 험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귀족이었지만, 시베리아에 와서 남편들과 함께 살 수 없었고, 작은 움막집에 살면서 손수 음식을 나르며 옥바라지를 했다. 오랜 수형 생활 후 이르쿠츠크 인근에서 살게된 그들은 거주지역이 제한되었고, 리콜라이 1세가 죽고 사면령이 내려진 후에도 몇몇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지 않고 이르쿠츠크에 남아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발콘스키의 집은 당시에 이르쿠츠크의 인텔리들이 모여서 시낭송을 하거나, 음악회를 열고 정치토론을 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데카브리스트들과 교류한 푸시킨의 편지도 보관되어 있다.

 

그후에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문인들에 의해서 작품에 등장하고, 영화와 오페라로 만들어진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인 안드레이 발콘스키는 톨스토이의 외가쪽 친척인 데카브리스트, 세르게이 발콘스키가 실제 모델이었다. 그래서인지 발콘스키 하우스에는 톨스토이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발콘스키 하우스 옆에는 즈나멘스키 수도원이 있는데 그곳 마당에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동상이 서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독신 수녀님들을 위한 수도원인데, 이곳에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무덤이 있어서, 감정이 되살아 나는 곳이다.

 

공작은 작위 중 가장 높아서, 아마 왕족이거나, 이에 버금가는 귀족으로

그래서 수형생활 후 페테르부르크의 가족이 많은 후원을 해 주어서

이르쿠츠크에서 크게 기여하고, 또한 문화적 예술적으로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 같다.

발콘스키 하우스 입장료는 200루블

 

 

 

 

 

                                                                   세계에 2대 밖에 없다는 포르테피아노  

 

 

 

 

                                                                             우아한 의류가 참 멋지다

 

 

 

 

                                                                    발콘스키 하우스 내부에 진열된 소품들

 

 

                                                                         

 

                                                                          아이들이 입던 옷가지들

 

 

 

 

 

 

 

 

 

 

 

 

 

 

                                                                             발콘스키 가계도

 

 

                                                                  

 

 

 

 

 

            거울 속에 사진을 찍는 사람이 집사람이고, 그 뒷쪽에는 박물관 가이드인 할머니와 내가 나온다. 귀중품이 진열되어 있으니, 꼭 가이드가 함께 다닌다.

 

 

 

                                                                  발콘스키 하우스 입구에 앉아서 기념샷

 

 

 

 

 

 

 

발콘스키 하우스 옆에 있는 즈나멘스키 수도원

 

 

 

 

발콘스키 하우스에서 한 블럭쯤 떨어져 위치한 트로베츠코이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