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 시드니에서 호주 북쪽 휴양지인 케언즈까지 자동차 여행을 했다. 시드니에서 케언즈까지의 거리는 대략 3,000 km, 왕복 6,000 km에 이르는 거리다. 북쪽으로 주욱 이어져서, 한적하게 지나는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인데, 해안선에 인접해 있는 도로를 따라서 간다. 일행 네명 중에 한명이 40 만원쯤 주고 승용차을 구입하여 가지고 있었는데, 그 차를 이용했다. 시드니의 8월은 겨울에 해당하고, 밤엔 8도, 낮기온이 15도 쯤 된다. 북쪽으로 위도가 낮아지는 케언즈는 25도가 조금 넘는 기온이다.
모두 해안선에 인접한 도시들인, 시드니 - 골드코스트 - 브리즈번 - 선샤인코스트 - 타운스빌 - 케언즈를 따라서 순서대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역순으로 내려왔는데, 이들 도시 사이에 있는 마을이나, 소도시 그리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놀기도 하고, 쉬면서 다녔다. 해변에 가깝게 이어져 있는 도로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네명이 각자 5천원씩 걷어서 2만원이나 1만5천원씩 하는 카라반에서 주로 자고, 카라반이 없는 곳에서는 저렴한 호텔에서 묵었다. 식사는 대개 만들어 먹었고, 가끔은 레스토랑에 가서 먹으며 다녔는데,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여행에 정한 일정이나 계획이 없이 다녔고, 8월 13일에 출발해서 대략 15일간 여행했다.
지나는 곳곳에, 특별히 멋진 경관들도 있지만, 우리와 다르게 이국적으로 보여지는 풍경 자체가 모두 새로운 느낌에, 신기하기도 했다. 길옆으로 수백 킬로미터가 이어지는 사탕수수 밭이나, 가도 가도 집이 없는 지역이 이어지다가, 작은 마을 같은 도시가 달랑 하나 나오고, 또 텅빈 지역이 이어지는데, 메마른 호주의 들판도 있고, 바닷가나 냇가, 마을 주변엔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이채로웠다. 아마 우리와 다른 환경이라서 모두 아름답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시골풍이 많이 나는 타운즈빌 주변을 지나는 동안에는 참 평화롭고 한적하며,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지구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운즈빌은 도시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시드니를 가려면,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서울엘 못가본 것 이상으로, 먼나라를 가는 것에 버금갈 듯하다. 주변엔 사탕 수수(Sugar cane)가 심어진 밭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은 완전히 시골 사람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애초에 이런 시골을 좋아하는 기질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에, 태국의 게스트하우스에서 65세 쯤 돼 보이는 호주의 은퇴한 부부 여행객이 타운스빌에서 왔다고 하였을 때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그들도 내가 타운스빌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말에, 그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내내 마주칠 때마다, 마치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호주는 인구밀도가 극히 낮고, 공장이 없다. 오염원이 없어서인지 뻥 뚫린 듯한 공간에, 시야가 아주 멀리까지 뻗치는 느낌이 처음엔 낮설게 다가온다. 산이 거의 없지만 평지에 코알라의 먹이인 유칼립튜스 류의 나무가 자란다. 나무가 없는 평지가 아니고 나무가 있는 평지다. 계속 산불이 났다는 뉴스는 1년 내내 나오지만, 자연 발화, 자연 진화 되고, 수십년에 걸쳐 다시 복원되기를 반복한다. 도시 주변이 아니면 산불났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내버려 두기도 하고(너무 넓어서).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1999년에 직장에서 일이 생겨, 시드니로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달링하버에도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그때도 시드니는 변해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우측, 로얄 보타닉 가든 앞 바위에서, 매일 혼자 낚시하던, 쓸쓸해 보이던 할아버지는 지금도 거기에 있을까.
여행 떠나기 전 집앞에서 기념 사진.
저 차는 15년인가 18년인가 된 일본산 차량으로, 여행에서 돌아 온 얼마 후 팔았다.
여행 중 카센터에서 점검을 하는데, 엔진에서 기름이 샌다고 고칠 수는 없고 엔진을 교체하라고.
Sea World라는 곳인데, 어느 도시인지 기억에 없다.
숙소엔 여행자를 위한 취사도구가 갖추어져 있다.
8월 13일에 시드니를 출발해서 20일쯤 케언즈에 도착한 듯하다.
케언즈는 열대우림(Tropical Rain Forest)지역으로,
시드니, 멜버른 등 남부지역의 주민이나 여행자들이 겨울에 이곳으로 휴양차 오는 곳이다.
같은 숙소에서 지냈던 헨리 에떼 해링거도 겨울에 시드니를 떠나 케언즈로 갔었다.
여행객 이외에는 대부분 비행기로 이동한다.
케언즈 인근에서 멋진 요트처럼 생긴 배를 타고 들어가는 투어에 참여했다. 섬의 모래는 모두 산호가 부서진 가루라고 한다. 모래보다 조금 가볍고 고운 모래다. 섬 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배가 푹 들어갔다 튕겨 나오고, 심하게 흔들렸는데, 뒤집히는 줄 알았다. 일행 중 한명은 헤엄을 못친다고 겁에 질려 풀죽은 모습으로 걱정을 하던 기억이 난다. 난 헝그리 정신에 누워 있으면 수면에 떠 있으니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지나다 어느 민가에 그냥 갔는데, 캥거루를 기르고 있다.
아저씨가 구경시켜 주엇다. 캥거루가 갑자기 발로 찰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길에는 가끔 차에 치어 죽은 캥거루 시체가 있다.
호주는 대륙이 넓고 인구가 적어서(당시 1,800 만명) 도로가 한산했다. 은퇴자들이 카라반을 가지고 몇 개월 또는 몇 년씩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상활하는 사람이 많다. 도로 주변에는 카라반 파크라는 장소가 있어서, 그곳에 세워도 되고, 넓은 땅 어디에도 놓을 곳은 많다. 내부에는 화장실, 냉장고, 식탁, 주방, 텔레비젼, 침대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아주 좋다.
또한 공원에 전기 바베큐 그릴이 있어서, 동전을 넣으면 작동되는 곳도 있엇다. 바베큐 재료만 가져와서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그 때는 물가가 그렇게 높지 않고, 식재료는 저렴했었는데, 아마 지금은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높아져서, 많이 올랐지 싶다.
우리나라에도 수 년전부터 카라반이 많이 보급되었는데, 사실 인구가 너무 많고, 도로 폭이 좁고,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호주는 넓은 땅에 시내 이외의 지역은 텅 비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열대 우림 숲을 구경하던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키가 엄청 큰 나무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도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아니면,
지나간 세월이 아름다운 것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