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영/불교 & 절

위빳사나 수행 알아보기..

자작나무. 2019. 2. 6. 13:19

설연휴에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관련 책을 읽는다, 

간략하게 정리한다.

 

수행에는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 2가지가 있으며,

사마타 수행은 止(집중), 위빠사나 수행은 觀(통찰)이다.

 

위빠사나는 경전에 근거하였으며,

부처님께서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른 바로 그 수행법이다.

수행 중에 체험하거나 일어나는 현상이 설명되어 있다.

 

 

물질과 정신의 허물(五取蘊)을 보지 못해서 존재갈애가 생겨나고, 들러붙은 집착이 윤회의 원인이 되어, 생노병사의 괴로움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괴로움을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 위빠사이다. 

다섯취착더미(五取蘊), 즉 정신과 물질의 법들이 생겨나는 대로, 끊임없이 관찰하는 수행이다.

 

 

     

 

 

 

 

오취온은 안,이,비,설,신,의의 6근에서, 분명하게 경험하는 법들일 뿐이며,  

그 형색 대상을 보고 아는 것 眼識, 느끼는 것 受, 인식하는 것 想, 볼수있도록 형성하는 것 行, 이처럼 대상을 아는 정신무더기 법들일 뿐이다.

 

이러한 물질과 정신법들은 애착할 만한 것이 아니며, 자아도 영혼도 나도 아니다.

하지만 항상하지 않으며, 괴로움일 뿐이며, 무아라고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좋아하여 애착하고 집착하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은 위와 같은 물질법과 정신법의 실상을 바르게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물질과 정신의 생멸을 안에서 확인하고 체험함으로써, 무상, 고, 무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것이다.

이것이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좌선 수행은 주로 배의 부풂과 꺼짐을 상세히 관찰한다. 

망상이 일어나거나, 소리가 들리거나, 아픈 느낌이 일거나, 가려운 느낌 등이 생기면, 그것들을 사띠(새김)하고, 

다시 배의 부풂과 꺼짐으로 되돌아와서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풂은 호흡으로 바람이 배로 들어가면서 부풀어 오를 때 생기는 느낌들을 세밀하게 새기면서 부풂이라고 마음으로 명칭을 붙이고, 바람이 빠져서 배가 꺼질때의 느낌을 자세하게 느끼면서 꺼짐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며, 이를 반복한다. 

 

부풂과 꺼짐은 풍대(바람요소)에 해당하며, 깊어지는 수행을 통해 생멸을 확실히 보고, 무상, 고, 무아의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나, 

열반으로 이끈다. 이렇게 여섯문(안이비설신의)에서 드러나는 모든 물질과 정신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찰나삼매와 지혜 도와 과의 지혜가 생겨난다.

   

 

마음청정

 

관찰되는 대상에 착 밀착하여 머물고 있는 삼매가 위빠사나 찰나삼매이며, 감각욕망, 바람 등의 장애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마타 수행의 근접삼매와 비슷하다. 산란하여 달아나는 장애들과 섞이지 않고 관찰하여 아는 마음만 앞과 뒤로한 마음처럼 생겨나므로, 이를 마음청정 心淸淨이라고한다.

 

견해청정 見淸淨

마음청정이 생기면 관찰의 대상인 부풂과 꺼짐 등의 정신과 물질무더기를, 섞임없이 구분하여 아는, 정신 물질 구별의 지혜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대상을 알지 못하는 물질법과, 대상을 아는 정신법이라는, 정신과 물질 두가지만 있다. 이 정신과 물질을 제외하고는 어떤 개인이나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이것을 견해청정 見淸淨 이라고 한다.

 

의심극복청정

이어서 계속 수행하면 관찰할 때마다 원인과 결과가 결합되어 물질과 정신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을 알고 보고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굽히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굽히는 물질이 생겨나는 것, 뜨거움이나 차가움 요소라는 불요소 때문에 뜨거운 물질, 차가운 물질들이 번갈아 생겨나는 것 등을 직접 경험하여 알고 보고 이해하게 된다. 그 밖에 좋다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 무명과 그렇게 되려는 갈애 때문에 집착하여 새로운 마음이나 의식이 생겨난다는 것, 죽음은 관찰하여 아는 이의 마음이 마지막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는 것 등을 조건법으로 알게되는데, 이것을 조건 파악의 지혜라고 한다.

 

조건과 결과만 이어져 생겨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이렇게 이전에도 그리고 나중에도, 원인과 결과로서의 물질과 정신만 있을것이다라고 알고 보고 이해하게 된다. 이를 의심극복청정이라고 한다. 그 물질과 정신을 자아, 나라고 생각하여 이전에도 내가 있었을까, 내가 있는 것일까, 죽은 뒤에도 내가 잇을까 라는 의심이 더이상 생겨나지 않게되어 의심을 극복래 버렸다는 뜻이다.

 

도, 비도 지견청정

이어서 수행하면, 물질과 정신들이 생겨나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항상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숙고하게된다. 이것이 무상 명상의 지헤이다.  생겼다 사라지면서 좋아할만한 점, 의지할 만한 점이 매우 두려워할 괴로움뿐이다.라고 생각하고 숙고하게 되며, 이것이 괴로움 명상의 지혜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고, 그 법들의 성품대로 생멸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 자아가 아니다, 무아의 성품법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숙고하게되는데. 이것이 무아 명상의 지혜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숙고하여 만족할 정도가 되면, 더이상 이렇게 생각하거나 숙고하지 않고 계속 관찰만 하게 되어, 광명도 나오고, 처음 생겨나는 모습과 멸하는 모습이 휙휙 분명하게 나타나고, 행복하고, 기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믿음이나 존경에 신경쓰지 않아도, 특별히 애쓰지 않고도 잘 관찰함 좋아함 등의 성품들이 나타난다.  이때 특별한 법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이 무르익지 않은 생멸의 지혜이며 잘못된 길이다. 경전에 해박한이나 스승에게 그러한 빛이나 광명 등은 특별한 법이 아니라고, 드러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관찰하기만 하는 것이 특별한 법을 얻기 위한 위빠사나의 바른 길이다' 듣고 믿고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도, 비도 지견청청 道非道智見淸淨 이다.

 

실천지견청정

도.비도 지견청정 유지해가며 계속 이어서 관찰해 가면, 빛이나 광명, 좋아함 등이 차츰 줄어들고, 관찰하여 아는 것만 분명해집니다. 움직임 한 동작씩 생멸해 가는 여러 작은 움직임들을 부분 부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위빳사나 부수번뇌들로부터 벗어난, 성숙한 생멸의 지혜입니다. 

 

그 지헤의 힘이 좋아지면 아는 것이 더욱 빨라집니다. 그래서 대상의 처음 생겨남보다 마지막 사라짐을 더욱 분명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관찰할 때마다 손 발 머리 몸 등의 형체나 모습을 경험하지 못하고 휙휙 계속 사라지는 것만 경험합니다. 이렇게 관찰할 때마다 대상과 아는 마음이 모두 싸을 이루면서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아는 것이 무너짐의 지혜입니다.

 

관찰할 때마다, 알 때마다 대상과 아는 마음이 즉시 사라지고 없어져 버리는 것만 경험하기 때문에 '두려운 곳이다'라고 생각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두려움의 지혜입니다. '좋아하고 즐길 것이 없다. 지겹고 넌더리나는 것이다'라고 보게 됩니다. 이것이 염오의 지혜입니다.

지견청정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백문백답"(일창 스님 편역),

"사마타와 위빠사나"(정신과 전문의 전현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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